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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내 아들아....
퇴근하여 들어오면서 집 안에 아무도 없어 너를 맘 놓고 크게 불러보았다. 마치 네가 있는 것처럼 평소 네 방에 있는 너를 부르듯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다정하게 아들아...어디 있어? 뭐 하니?...라고
그러나 곧 엄마가 맞닥뜨린 그 엄청난 침묵 속의 고요라니... 감당하기 힘든 너무나 커다란 절망 그 자체였다. 아들아. 이상기후의 징후로 녹아 부서진다는 남극의 거대한 얼음덩어리 산이 갑자기 덮치면 그 만큼 참담할까. 아무도 없는 휑한 집에서 사진 속의 너를 붙잡고 누구 눈치 볼 것 없이 내맘껏 목놓아 울었구나. 너는 늘 엄마가 하는 말에 알겠어...라고 대답하곤 했지.
알겠어 알겠어...‘알’을 조금 낮게 그리고 ‘겠’을 약간 빠르면서 억양을 약간 높여, 그리고 ‘어’는 리듬을 타고 떨림음처럼 한 옥타브 올려서... ’써‘...이렇게...
아들아. 네 방에서 문을 닫고 있다고, 여기저기 옷이며 물건을 늘어놓는다고, 컴퓨터를 오래 한다고, 술 담배를 한다고, 공부를 안 한다고, 독서실에 학원에 학교에 안 간다고, 가족이 함께 하는 일에 빠지려 한다고 엄마 아빠가 잔소리할 때 넌 얼마나 싫었겠니? 그런데 그때가 엄마의 남은 생명을 모두 주고서라도 다시 돌아가고 싶은 얼마나 행복한 순간들이었는지를 눈물겹게 깨닫는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제 엄마에게는 너를 괴롭게 했을 그 잔소리들로 채워진 너와의 대화 한 토막 한 토막이 겨우 추억 삼아 너를 더듬는 살가운 자산으로 남았구나. 생각해보면 이만큼의 인생을 살아오면서 너한테 또 다른 이한테 엄마가 알게 저지른 죄와 잘못도 숱하게 많으니 또 모르게 지은 죄인들 얼마나 많겠느냐.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 엄마가 지은 숱한 죄를 네가 다 품고 간 거라는 생각이 가슴 뭉클하도록 머릿속에 사실로 와 꽂힌다. 그래서 한없이 네게 미안하고 고개를 들 수가 없이 세상 모든 것이 엄마에게 죄의식과 반성과 자책을 다그치는구나. 그러다가도 또 어떤 때는 내게서 너를 누가 강제로 빼앗아 간 거냐고 훔쳐간 거냐고 왜 내가 너를 잃어야 하느냐고 도대체 누가 왜 너를 내게서 데려갔느냐고 어디 대고 거세게 항의라도 하고 싶고 어처구니없고 억울하고 분한 심정을 좀 야무지게 따져주고 싶건만 마땅한 대상을 모르겠어서 약이 박박 오르는 이 엄마의 단순치 않은 심정을 아들아 너는 알겠니?
지난 주에는 드디어 49재를 지내 너를 극락세계로 보내주었다. 그런데 어쩜 49재 이전과 이후의 마음이 이렇게 천지 차이인지... 전에는 아침저녁으로 따뜻한 밥이며 네가 평소 좋아하던 음식을 네 영정 앞에 놓아주며 너를 불러도 보고 눈물 속에 이야기도 해보고 너를 위해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게 한 가닥 위안이 됐는데 이젠 그마저도 할 아무런 명분이 없어졌으니 어디 어느 방향으로 서서 너를 불러야 할지 그저 막막하기만 하다.
네가 좋아하는 음식을 대하고 있기가 어찌 이리도 가슴이 에린 일인지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린 듯이 헛헛하다.
아들아 사랑하는 내 아들아
네가 엄마 눈에 보여도 안 보여도 너는 여전히 하나 뿐인 내 아들이다. 내 마음 속에 언제나 네가 있으니 다만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네가 없다고 할 수 있겠느냐. 밝은 대낮에 분명하게 보이던 것들도 어두워지면 보이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도 그 시간 그 공간에 분명히 존재하는 것을... 보이고 보이지 않고가 어찌 존재여부를 논할 기준이 되겠느냐. 아들아 이렇게 분명히 그리고 여전히 너는 내 아들이다. 사람들은 너를 잊으라고 한다. 그저 별뜻없이 위로하고자 의례적으로 하는 말인 줄 알면서도 맘 속으로는 분노가 인다. 너를 잊으라니 잊어버리라니.....어떻게 너를 잊으며 왜 잊어야 한단 말이냐. 엄마인데 내가 네 엄마인데 너를 어떻게 잊는단 말이냐....
아들아 네가 떠나던 날 너를 확인해주고 연락해준 경비 아저씨한테 감사의 말이라도 전하는 것이 도리인 줄 알면서도 차마 너와 관계된 어떤 말도 누구와 마주 서서 할 수가 없어 차일피일 미뤄왔는데 오늘 작은 선물을 드리면서 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올라와 대성통곡을 하고 말았다. 가슴이 찢어진다는 말이 그동안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써왔구나. 아들아 내 아들아 엄마의 가슴이 이렇게 찢어지는 것 같다. 네가 너무도 보고 싶다. 너무도 그립다. 그런데 넌 정말 어디서도 볼 수가 없구나. 세상에 이렇게 완벽한 절망이 또 있겠니... 허공에 대고 가끔 정말 진심으로 그리고 절박하게 묻는다. 아들아 너는 지금 어디 있니? 어디 있어? 응? 보고 싶은데 너무나 보고 싶은데... 정말 너무나 보고 싶은데. 우리 아가 내 강아지 우리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