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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좀 날이 풀린 듯하다. 우리 아들 거기서 춥니? 추워서 떨고 있니? 내 아들...
사랑하는 우리 아들아. 눈을 감으면 엄마는 네가 다아... 보인다. 다시 다림질하기 귀찮다고 집에서는 벗으라고 벗으라고 해도 편하다며 줄기차게 교복 바지를 입고 앉아서 컴퓨터를 하는 네 등도 보이고, 팬티만 입고 온 집을 활보하는 너도 보이고, MP3며 휴대폰을 들고 다니며 큰 소리로 음악을 듣는 너도 보이고, 그렇게나 좋아하던 유벤투스 축구팀의 멤버에 대해 즐겁게 이야기하는 너도 보이고, 소파에 허리를 길게 늘이고 앉아 무한도전을 큭큭 웃어가며 보고 있는 너도 보인다. 자동차와 축구 잡지 소설 야망 랭보 에픽하이책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고 있는 너도 보이고, 내용이 좀 방탕한 듯해서 못마땅해 했던 미드를 컴퓨터로 보고 있는 너도 보이고, 물을 먹기 위해 컵을 들고 정수기로 걸어가는 너도 보이고, 유난히도 재채기를 잘 하는 너도 보이고, 식탁에 앉아 엄마가 사다 준 치킨또띠야를 먹고 있는 너도 보이고, 퇴근길에 너에게 물어 이마트에서 사다 준 초밥을 먹는 너도 보인다. 후라이드 치킨 한 마리를 혼자 다 먹는 먹성좋은 너도 보이고, 미역줄기를 싫어하는 네가 국에 줄기를 많이 떠줬다고 엄마 내가 엄마한테 뭐 잘못했어...라며 웃던 너도 보이고, 아침에 침대에 누워 잠깐만 5분만..하는 너도 보이고, 베란다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다 현장에서 들키고는 뭐라고 변명도 못하고 죽을 죄를 지은 양 면목없어 하는 너도 보이고, 친구 학교 축제에 가려고 네 옷 중 어떤 걸 입어야 더 좀 나아 보일까 하고 이옷 저옷 갈아입으며 어떤 게 나아..하고 묻는 너도 보여. 학원에 독서실에 안 가고 갔댄다고 아빠한테 혼나는 너도 보이고, 주말이면 으레 손과 발을 내밀고 깎아달라고 손톱깎기를 내미는 너도 보이고, 아파트 정원 벤치에 친구들과 앉아서 이야기를 하는 너도 보이고, 가방을 메고 그닥 가볍지 않은 걸음으로 학교를 가는 너도 보이고, 어려서 금강산 여행갔다가 엄마에게 목걸이를 사다줘서 이 엄마를 감동시키는 너도 보이고, 누나와 보자기를 어깨에 두르고 역할놀이를 하는 어린 너도 보이고, 불편한 보조기를 차고도 단 한 번도 안 하겠다고 떼를 쓰거나 친구들이 놀리는 걸 내게 와서 이르는 일 없이 그저 묵묵히 견뎌내던 너도 보인다. 보조기를 풀고 한참 지난 뒤에 상가 앞에서 만난 초등학교 친구가 너를 로보캅이라고 불러 그 사유를 묻고서야 이 멍청한 엄마는 네가 한때 보조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그런 놀림을 당하기도 했음을 알았지. 왜 그때 한 번도 말 안 했느냐는 엄마 말에 너는 말하면 뭐해 괜히 엄마 맘만 아프지..라고 말해서 엄마 아빠가 뜨거운 눈물을 쏟게 했었지... 그렇게 기특하고 대견한 내 아들이었는데... 아기 때는 그렇게나 좋아하던 공갈 젖꼭지를 네 스스로 베란다에서 아래로 떨어뜨린 다음에는 다신 찾지 않았던 그렇게 본인 책임이라는 것도 잘 알고 의지도 굳은 너였는데 왜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돼서 지금 이렇게 됐는지 너무나 어이없고 기막히구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지. 네가 이 세상에 없다니...앞으로 절대로 절대로 너를 볼 수 없다니... 아들아 잠시 가출이라면 몰라도 어떻게 그렇게 냉정하게 다시는 돌아올 수가 없는 길을 매정하게 그렇게 가니 아들아... 엄마는 네가 없는 지금의 이 현실이 아직도 어지럽고 정신 없어. 아무것도 모르겠어. 그냥 아주 어둔 화면으로 얼룩진 정신 사나운 흑백꿈을 길게길게 꾸고 있는 거 같애.
어느 때 가끔 엄마는 네가 이 엄마의 활동영역이 아닌 조금 먼 어디 서울 시청 거리, 아니면 경상도,,아님 제주도, 아니면 미국이나 어디 다른 나라에 가면 거기 네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엄마를 에워싸고 있는 이 테두리를 벗어나 더 멀리 뛰쳐나가면 거기에 네가 있을 거 같고 만날 거 같애. 그런 생각이 자꾸 아주 특별한 영감처럼 지혜처럼 떠올라 문득 문득... 그러나 그러다가도 막상 너 없는 현실의 생활로 돌아오면 모든 게 천길 낭떠러지 저 아래로 추락하는 하찮은 작은 돌멩이처럼 더러운 휴지 조각처럼 작은 벌레처럼 아주 부질없어진다.
내 아들아. 너랑 같이 마주 보며 이야기하며 밥먹고 싶다. 내가 맛있게 따뜻하게 만든 밥을 네게 먹이고 싶다. 너랑 같이 앉아서 TV를 보고 싶다. 네 손과 발을 붙잡고 손톱 발톱을 깎아주고 싶다. 너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 엄마..하고 부르는 너를 내 아들 너인 채로 온전히 느껴보고 싶다. 너만의 살가운 냄새를 맡고 싶다. 엄마보다 훨씬 큰 네 몸이라도 너를 내 품에 오롯이 안아줘 보고 싶다. 네 뺨에 볼을 대고 가만히 네 체온을 느껴보고 싶다. 거실에 왔다갔다 하는 너를 보고 싶다. 언젠가 너를 혼내고 잠잘 때 몰래 그랬듯이 곤하게 자고 있는 너를 가만히 옆에서 지켜보며 쌕쌕 숨쉬는 소리를 듣고 싶다. 네게 뭐가 먹고 싶으냐고 물어서 좋아하는 맛있는 간식을 사다주고 싶다. 이젠 기름기가 많건 인스턴트이건 그런 거 안 따지고 네가 너 좋아하는 음식을 맘 편히 먹을 수 있게 해 줘 보고 싶은데... 그런데 엄마는 이제 그래 볼 기회를 영영 잃어버렸구나. 아주 영영...놓쳐버렸어...너랑 뭘 같이 함께 하는 게 절대로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 돼 버렸어.... 세상에.....그러니 아들아 어쩌면 좋으냐 어쩌면...너를 모형으로 만들어서라도 엄마 옆에 두고 보고 싶다. 네가 떠나간 이후 가장 안타까운 일은 너의 동영상이 없다는 거야. 그 생각만 하면 눈물이 저절로 난다. 아들아 컴퓨터에 있는 너의 사진들과 집에 엄마가 여기저기 붙여놓은 사진을 보면서 매일 너와 대화를 한다. 결국엔 내가 묻고 내가 대답하는 거라도 그러나 그게 엄마의 하루 생활에 아주 큰 위로가 된단다. 네 목소리를 아는 내가 네 목소리로 느끼니 너인 거야. 그치 아들아? 사랑하는 내 아들 보고 싶은 내 아들 너무 보고 싶으다. 정말 너무 보고 싶어... 눈을 뜨면 사라지는 너를 영원히 앞에 두고 볼 수만 있다면 엄마가 이 눈이라도 바치고 싶구나. 보고 싶은 내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