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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광사는 신라시대인 894년(진성왕 8년) 왕명에 따라 도선에 의해 비보사찰의 하나로 창건되었습니다.
당시 국가의 비보사찰로서 한강 이북의 6대 사찰 중의 하나였습니다.
고려시대인 1215년(고종 2년) 원진국사가 중창을 했고 또 법민 대사가 불보살 5위를 봉안했으며, 계속해서 1388년(우왕 14년)에는 무학 왕사가 삼창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임진 왜란 때에 사명 유정이 이곳에서 승병 3천명을 거느리고 권율과 함께 왜군에 대항하면서 전소했으며, 이때 많은 시체가 이곳에 쌓였으므로 지금도 피밭골이라고 불린다.
1622년(광해군 14년)에 설미, 덕인 두 스님이 함께 중건했으며 1634년(인조 12년)에 범종 봉안 불사가 이루어졌습니다.
1667년(헌종 8년) 지간, 석련 두 스님이 대웅보전, 관음전, 등을 재건하는 등을 중수했다고 합니다.






서기 1740년(영조 16년)에는 부근에 숙종의 후궁으로 영조 임금을 낳은 숙빈 최씨의 묘인 소령원이 가까운 관계로 절을 숙빈 최씨의 원찰로 삼아 대웅보전, 광응전을 중수하고 만세루를 창건했다고 합니다.
이후 조선시대 후기에 쌍세전, 나한전, 큰방, 수구암 등을 새로 짓고, 지장보살과 시왕상, 16나한상 등과 각 전각의 탱화 등을 봉안하였으며 1901년(광무 5년)에 인파스님이 상궁 천씨 등의 지원을 받아 대웅전과 만세루를 중수하는 등 절의 면모를 일신시키는 불사를 하였습니다.
근대에 들어와서는 한국전쟁 당시 많은 피해를 입었으나 전쟁 뒤 중창불사가 이루어졌고 관음전을 새로 지었으며 만세루를 해체, 복원 하였습니다.